진료실 안 이야기/진료실에서 16

새로운 치료에 대한 현혹

대체 치료법이 특정 증상이나 환자의 일부에서만 잠재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일 때, 기존의 치료보다 효과적인지 위험한 부작용이나 건강상의 위험이 없는지, 가족이 그 치료를 적절한 범위에서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검토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현혹시키는 기적의 치료법들이 겉보기에는 얼마나 믿음이 가는지, 또는 얼마나 옳게 보이는지는 실제 치료 효과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주장들의 이면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런 주장들을 지지하는 과학적 연구가 든든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존의 치료와 전혀 다른 새로운 치료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길 바랍니다. 내 자녀에게 효과가 있을 것인가? 다음 사항에 해당된다면 증명된 치료법이 맞..

조곤조곤 김선생

다른 사람들의 후기나 경험함에 귀를 쫑긋 기울이지만, 나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는다. 소신이 흔들릴까봐, 상처를 받을까봐. 그러다 한번씩 추천글 제목에 내 이야기가 보이면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안절부절 못하다가 과감히 글을 열어보기도 하는데... 냉정한 마음으로 글을 읽을 수 있으면 고칠 점은 고치고, 노력할 부분은 더 노력하고, 장점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만 나의 정서는 유리 보다도 약해서 긴장이 앞선다. 오늘 그렇게 읽은 글에는 다행히 좋은 내용만 담겨 있었다.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 부분을 강점으로 특화시켜야겠구나 싶다. 자존심을 살짝 놓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늘 생각하는 실력있는 의사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지만 현실의 다양한 때와 장소에서 그에 맞는 모습으로..

선별진료소에서 만난 할머니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4일 전, 코로나감염증 선별진료소에서 진료를 했을 때이다. 방호복을 입고 음압진료실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입을 다시며 하소연을 늘어놓으셨다. 지역 특성상 시골 깊은 곳에서 어렵게 나오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버스를 갈아타면서 병원에 왔는데 '여기 가라, 저기 가라' 하루 종일이라며 넋두리를 하시는데 정겹고 구수한 입담에 덩달아 '예, 그렇지요, 이 놈의 병원 참... 제가 빨리 봐드릴게요' 하며 맞장구를 쳐드렸다. 소변이 붉어서 비뇨기과에서 소변검사와 간단한 혈액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발열이 있어 급하게 선별진료소로 의뢰가 된 경우였다. 결과가 나왔지만 담당 선생님의 설명은 아직 듣지 못한 상태였는데 소변이 붉은 것은 혈뇨가 아닌 빌리루빈..

코로나 시대 소아과 의사로 살기

소아과 의사를 왜 하려고 해요? 애들을 좋아하시나봐요. 그거 돈도 안될텐데... 출산율도 떨어지고. 오래전 내가 소아과 의사의 길을 걸으려 할 때 주위에서는 우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걱정은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생사가 오가고 언제 응급상황이 터질지 모르는 과와 비교할 바 아니지만 노력과 시간에 비해 보상은 보잘 것 없는 소아과를 왜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 어른 진찰 보다는 애들 진찰이 적성에 맞았다. 출산율이 떨어지는데 소아과는 널려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졌기에 난 소아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내겐 꿈이 있(었)다. 세상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일개 의사가 꿈도 컸지. 그게 어디 의..

갑작스러운 독감 접종 중단

질병관리청은 13-18세용 무료 인플루엔자 백신이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되어 오늘로 예정된 접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 무료 접종(6개월~12세)과 임신부, 어르신 접종도 같이 중단했다. 문제를 쉬쉬하며 숨기지 않고, 즉각적인 대처를 하는 모습은 높이 살 만하다. 변질된 백신을 국민들에게 접종해서는 안되는 일이니까. 인플루엔자 백신은 냉장 보관이 원칙이다. 하지만 한 예로 GSK의 플루아릭스의 경우 상온(+21℃)에서 최고 1주일까지도 변질되지 않는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은 상온에 얼마나 방치되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왜 전면적인 중단인가? 13-18세용 물량 중 일부가 문제가 된 것이고, 기존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대상자와 어르신 대상 백신은 문제가 없는데 왜 전부 중단을 했..

독단적인 예방접종 예약

2020-2021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무료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예방접종 예약서비스를 확대했는데, 실제 접종을 시행하는 일선 의·병원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지한 터라 반발을 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에서는 이전부터 예방접종 예약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동네에 널린 게 의원이라 굳이 예약을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인지 실제 예약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번에 독감 접종 예약과 관련하여 원성을 사는 이유는 예약서비스 자체가 상호 협의하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질병관리본부의 독단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정책을 강제적으로 시행할 때는 이런 시나리오가 있지 않았을까. -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도우미: 코로나도..

의사 파업에 즈음하여

의대 신설과 한시적 의대생 증원, 공공의료 의무 복무, 거기다 한약 첩약 급여화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의료계가 달아오르고 있다. 전공의협의회가 주도가 된 파업이 어제 한 차례 있었고, 오는 14일에는 의사협회의 파업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의사의 파업을 놓고서는 의사끼리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누구는 자영업자이고, 누구는 회사원 같은 봉직의이고, 누구는 많은 의사를 고용한 경영자이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이를 두고 착한 의사, 나쁜 의사로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파업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번 정책에 대해서는 하나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다. 정부는 여전히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며, 언론에서는 그에 힘을 싣는 기사를 연이어 내고 있다. 병원협회와 중소병원..

코빼주세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시대. 진료실에서 달라진 '반가운' 풍경이라면 콧물 빼달라는 요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유나 수면에 방해가 될 정도거나, 기침을 유발하고, 코 밑이 헐 정도라면 먼저 나서서 코를 빼고 가라고 하는데 코로나 유행 이후에는 그마저 그만두었다. 간혹 요청하는 보호자도 있지만 비말의 위험성을 살짝 언급하면 손사래를 치며 안빼겠다 한다. 덕분인지 난 철마다 한 번씩 걸리던 감기에서 해방. 어느 블로그에서 장염 걸린 아이를 둔 부호자가 열흘 넘게 다닌 소아과 의사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글 아래 달린 댓글이다. 정말 이 선생님은 장염 치료도 못하고, 아이들 코도 건성으로 봐주는 의사일까? 글쓴이가 진료때 들은 설명을 상세하게 적었는데,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근거 없는 설에 휘둘..

장사꾼 의사

의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참 애매하다. 의술은 인술이라며 상대적인 때로는 절대적인 희생을 기대하고, 이윤을 밝히는 의사를 비난한다. 돈만 밝히는 장사꾼 취급을 하면서. 그런데 진짜 장사꾼은 좋은 선생님 대접을 해준다. 박리다매 전략과 현금할인이라는 불법행위로 얌체 장사꾼 짓을 하는데 어쨌건 내 돈을 아꼈거든. 네이버 블로그에서 예방접종이 저렴하다는 모 연합의원 홍보+후기글을 읽다 보니 착잡해진다. 이렇게라도 먹고살아야 하나 싶다가.. 지킬 건 지켜야지 싶다가..

머리 아픈 아이

머리가 아프다고 오면 (내) 머리가 아프다. 스스로 증상을 표현하지 못하고 보호자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소아 환자의 경우 이 아이가 실제로 두통을 겪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간헐적인 두통의 경우 진료실에서는 증상과 징후를 발견할 수가 없고, 두통이 있을 때의 아이의 행동에 대해 보호자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실제로 두통은 없으나 표현을 '머리 아파'로 했을 수도 있고. 일시적인 피로감, 코막힘으로 인한 답답함 등을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부비동염이나 근시 등의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별 것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는 일. 별다른 신경학적 증상 없었는데 뇌 자기공명영상(M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