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안 이야기/진료실에서 16

코로나 핑퐁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이 39도가 넘는 고열과 두통 증상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다. 이글을 쓰는 이유는 환자의 증상이나 진단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나에게 오게 된 경위가 참 어이없기 때문이다. 고열 때문에 학교에서는 코로나(COVID-19)를 염려하여 학생을 조퇴시키고 진료를 보게 했다.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보건소를 방문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건소에서는 코로나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코로나는 아닌 것 같으니 응급실이나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니 보건소에서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환자를 평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아이는 발걸음을 돌려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고열이 있다는 이유로 접수조차 할 수 없었고 옆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로 안내..

버튼 그거

드디어 버튼에 진한 테두리와 색깔이 입혀졌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뻔히 불편함이 보이는데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이제 제법 헛클릭질 없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대상자조회 / 저장 / 삭제 등의 메뉴에 진한 테두리와 색상이 입혀진 것이 보인다. 예전에는 가장 위쪽의 조회 / 초기화 / 즐겨찾기 등과 같이 글자 주위로 옅은 테두리만 있어서 버튼과 텍스트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아 마우스만 왔다갔다 한 적이 많았다. 가뜩이나 눈도 침침한데... 그간 어려 불편함이 꽤 많이 접수되었을텐데 하나하나 반영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차분히 기다려 볼 생각이다.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한 부분까지도 더 개선될 여지가 있으니.

뜻밖의 검소함

진료실 창문이 복도를 향해 나있는데, 그 복도에는 여러 검사실이 있어서아이와 보호자들이 늘 그곳에서 대기하며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소리를본의 아니게 듣게 된다. 오늘은내 얘기가 나오길래귀를 쫑긋 세웠는데. "OO은 진짜 검소한 것 같더라.""왜?""아까 옷 소매 보니까." 응? 무슨 소리인가 싶어얼른 소맷귀를 보았다. 헤어져서올이 풀려가는내 옷 소매. 그래.내일은쇼핑을 좀 하자.

그 날 그 아이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할머니와 손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아이가 열이 있는데학교에 독감이 한창인 때라 병원에 가보라는 연락을 받으셨다는 할머니의 말씀. 검사 결과 인플루엔자 진단을 받고당분간 학교는 쉬고 집에서 격리를 해야한다고 설명드리자아이도 할머니도 곤란한 눈빛이다. 아이는 학교에 가면 안되냐고, 학원도 가면 안되냐고, 꼭 가고 싶다고 말하고할머니께서는 당신도 일을 하러 가야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사정은 딱하지만원론적인 얘기만 반복하고 있는데 학교는 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데.. 중얼거리던 아이가 내내 그 얌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 좀 무서워도 나 집에 혼자서 있을 수 있는데... 대신 할머니가 걱정을 하시겠지." 환자차트를 다시 보았다. 만..

메리 크리스마스

하루의 반을 보내는 장소.밖은 시끄럽고, 안은 전쟁터.차갑고 딱딱한. 이 곳에도 크리마스는 있어야겠지.해서 준비했다. 어지러운 책상을 더욱 정신없게 해 줄 내 크리스마스 트리. 어디에 둘까 고민하다가피규어 케이스에 넣기로. 크기가 딱이다.덕분에 그 자리에 있던 원피스 피규어는 잠시 책장 위 빈자리로. 조명을 켜보았다.케이스 조명을 켰을 때의 느낌은. 따스하긴 한데..이번에는 트리 조명 ON. 케이스 조명 OFF. 역시. 트리에는 반짝이 조명. 그리고벽 한켠에도 소심한 장식 추가. 그런데 애들은 여전히 발버둥치며 운다.잔잔한 캐롤이라도 틀어놓을까 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참고로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드망플라워↗에서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