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4일 전, 코로나감염증 선별진료소에서 진료를 했을 때이다. 방호복을 입고 음압진료실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입을 다시며 하소연을 늘어놓으셨다. 지역 특성상 시골 깊은 곳에서 어렵게 나오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버스를 갈아타면서 병원에 왔는데 '여기 가라, 저기 가라' 하루 종일이라며 넋두리를 하시는데 정겹고 구수한 입담에 덩달아 '예, 그렇지요, 이 놈의 병원 참... 제가 빨리 봐드릴게요' 하며 맞장구를 쳐드렸다.
소변이 붉어서 비뇨기과에서 소변검사와 간단한 혈액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발열이 있어 급하게 선별진료소로 의뢰가 된 경우였다. 결과가 나왔지만 담당 선생님의 설명은 아직 듣지 못한 상태였는데 소변이 붉은 것은 혈뇨가 아닌 빌리루빈뇨였다. 눈과 안색이 노란 것과도 일치했다. 얼른 배를 촉진해 보았지만 간비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나간 혈액검사에는 간기능이나 담도를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 빠져 있어서 할머니에게 설명을 드렸다. 한차례 발열이 있었던 것은 검사를 통해 코로나감염증을 배제해야 할 필요가 있고, 황달이 있는 것은 추가적인 검사를 더 해봐야 한다고.
황달이라는 말에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지난 설날에 며느리가 '어머님 얼굴에 황달기가 있어요' 라고 하더라며 '그러고 보니 눈이 노랗대' 하고 말씀하셨다. 왜 병원 안나오셨냐 여쭈었다. 앞서 한번 들었던 '아침에 집안일 정리하고 걸어나와서 버스 갈아타고 나오는게 보통 일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야 했다. 자식들이 모두 타지에 있어서 홀로 지내시는 것 같았는데 가까이에서 가족이 있었다면 모시고 나올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가볍게 진료볼 생각으로 나오신 것이라서 당장 입원을 하거나 검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오늘을 코로나 검사만 하고 내일 결과 나오면 내과 진료를 꼭 받으시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할머니와는 헤어졌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에 먼 길을 홀로 병원을 다니시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 곧 그 나이에 이르를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동요되었다.
다음날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온 후 내과 진료를 받으셨는지 얼른 확인해보았다. 다행이다. 다녀가셨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검사는 다음날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대수롭게 넘기지 않고 병원에 나오셔서 진료를 받으신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복부 CT와 혈액검사 몇가지를 받으셨다. 간담도를 평가하는 여러 지표에서 수치가 상승되어 있었고, CT에서는 담도암이 의심된다는 판독이 나왔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가 아닌, 가족이 아닌 생면부지 누군가의 암 의심 소견에 마음이 옥죄어 왔다. 홀로 지내시는데.. 자식들은 먼 타도시에 있다고 하셨는데.. 검사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신 것일까, 진료의뢰서 가지고 할머니께서 병원 예약은 잘 하실지, 가족이 모시고 갈 형편이 될지, 사정도 모르면서 혼자 이런 저런 걱정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질병에도, 죽음에도 점차 무덤덤해지던 나였는데 왜 이럴까.
내 손을 떠난 일인데 계속 마음이 무겁다. 내 어머니 일 처럼, 내 자신의 일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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