ᴇ ᴜ ᴍ ᵐᵉ
작성일
2024. 9. 26. 15:52
작성자
이음ㅤ

잃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던 것들. 올해 초 식사 중 어금니에 금이 갔을 때와 지난주 입천장에 상처가 나면서 음식을 맘껏 씹을 수 없었을 때 삶의 큰 재미를 잃은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은 그 맛을 느껴볼 여유 없이 입 안이 아프지 않기만을 신경써야 했고, 배부르게 먹기 보다는 아프기 전에 식사를 마치는게 우선이었다.

 

이에 이어서 눈. 나에게도 노안이 왔다. 멀리 보면 흐린게 싫어서 렌즈의 도수를 조금씩 올렸더니 언제부턴가 가까이가 흐릿하다. 뻣뻣해진 내 수정체는 이제 가까이 보는 능력을 소실해 가고 있다. 그러고보니 손에서 책을 놓은지도 꽤 되었고,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컴퓨터도 여가 시간에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선명히 보지 않아도 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과 숲을 찾았고, 횡단보도 건너 저 사람이 지인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아 발 밑이나 옆 매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몇년 전 사용하던 안경을 한번 써보았다. 역시 저 앞이 흐리다. 의도치 않게 아는 얼굴에 인사를 하지 않는 차가운 인간이 될 수 있겠다. 대신 책의 글이 잘 보인다, 집중이 된다, 오래 읽을 수 있다. 컴퓨터 화면을 보아도 눈이 덜 피로하다. 애꿎게 인공 눈물만 자꾸 넣어주었는데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그래 이제 다시 책을 읽고, 배우고 싶던 코딩도 해보고, 악보를 보며 피아노도 배울 수 있겠다.

 

고개를 들어 길건너를 본다.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하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 만큼은 선명하게 보고픈데, 형체만 기억에 남게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