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을 분류할 때 물집이 생기는 것을 '2도 화상'이라고 합니다. 물집이 잡혀서 온 환자 상당수가 진단서에 '심재성' 2도 화상이라고 작성해 달라고 종용하거나 부탁합니다. 이는 실비보험 등에서 심재성 2도 화상의 경우 진단금 보상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의사 가운데는 그 요구에 응해주는 경우도 제법 있는데 이는 의사들이 심재성 2도 화상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몰라서 그렇거나 또는 보험금을 타려는 환자에게 안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귀찮거나 환자와 마찰이 생기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심재성'이라고 써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하는 것은 허위 진단서를 요구하는 범법 행위입니다. 이를 보험사에 제출하면 사문서 위조 및 행사에 해당됩니다.
앞서 물집이 생기는 화상을 2도 화상으로 분류한다고 했습니다. 2도 화상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표재성 2도 화상과 둘째는 심재성 2도 화상입니다. 각종 사보험에서는 보험약관을 통해 '심재성 2도 화상' 일 때만 진단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의 구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심재성과 표재성을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은 사실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보험사 규정을 참고하면 '심재성 2도 화상'을 '조직검사상 하부 진피를 침범한 것이 확인될 때'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마다 규정의 차이가 조금씩 있을 수는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화상 부위의 조직을 떼어내서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법이지요.
조직검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피부 조직의 구조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피부는 아래 그림과 같이 여러 층으로 나뉘어집니다. 제일 위 층에 표피가 있고, 그 아래에는 혈관 분포가 풍부한 진피조직인 유두상 진피(papillary dermis)가 있습니다. 그 아래는 진피의 하부 부분으로서 혈관 분포가 듬성듬성한 그물망 진피(reticular dermis)가 있습니다.
유두상 진피는 혈관이 풍부해서 화상의 깊이가 이 층에 국한되면 상처 치료시에 흔히 피가 잘나고, 예민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부종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생깁니다. 치료를 잘하면 보통 1~2주 사이에 상처 입은 피부가 회복이 됩니다. 대부분 일시적인 홍반, 착색 또는 탈색이 동반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져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 정도가 되면 거의 정상 피부와 비슷한 색조를 띠게 됩니다.
하지만 유두상 진피층 밑으로 혈관이 듬성듬성해지는 그물망 진피가 있는데 여기까지 화상이 미친 경우에는 표피로 가는 신경의 말단부가 부분적으로 손상되어서 통증이 오히려 덜하고, 상처가 창백해 보이고 상처 부위를 문질러도 피가 잘 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심재성 2도 화상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피부가 재생이 되더라도 착색, 탈색 또는 피부가 쪼그라드는 현상을 남기게 되어 정상 피부보다는 창백한 색조를 띠는 다른 상태의 피부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를 바탕으로 결국 의사의 임상적인 판단에 따라 진단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상처를 소독하면서 피가 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가피가 앉은 부위를 제거해보면 더욱 확실합니다. 상처 부위에 피가 잘 나면 표재성으로 판단합니다. 반면 피가 잘 나지 않거나 화상 부위를 눌렀을 때 하얗게 변했다가 돌아오는 색조 변화가 없다면 심재성 2도 화상으로 판단합니다. 처음에 표재성으로 진단하였더라도 후에 영구적인 흉터가 남는다면 심재성 2도 화상으로 진단이 바뀌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심재성 2도 화상으로 진단하는 경우는 이렇습니다. 최소한 2주 이상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상이 낫지 않거나, 다 나아도 색소 침착과 탈색등이 남는 경우, 치료과정에서 새살이 돋을 때 창백한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때에 한해 심재성 2도로 진단합니다.
※ 표재성 2도 화상과 심재성 2도 화상의 구분 기준 | |
표재성 2도 화상 | 심재성 2도 화상 |
표피, 유두상 진피층에 국한된 손상 | 그물망 진피층까지 손상 |
통증, 부종, 물집 형성 | 화상 부위 피부가 창백, 통증이 약함 |
상처치료 중 피가 잘 남 | 치료시 피가 잘 안남 |
2주 이내에 상처가 치료됨 | 2주 이상의 치료를 요함 |
2~3년 뒤 흉터 없이 경쾌됨 | 심한 탈색, 착색, 흉터를 남김 |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2도 화상의 심재성과 표재성의 기준은 화상의 깊이, 즉 피부의 어느 층까지 손상을 입었는가에 의해서 결정되고 이는 진찰 시 시진과 치료기간을 통해 진단해야 합니다. 2주를 기준으로 그 이후에도 상피화가 완료되지 않는다면 심재성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용 진단서는 내원 즉시 작성하지 말고 어느 정도 치료가 종료될 시점 혹은 2주 이상의 치료 후 화상 부위의 회복 정도를 보며 최종적 화상의 깊이를 결정해서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 부위의 화상 상처에 서로 다른 깊이의 화상이 혼합되어 있다면 표재성과 심재성을 각각 몇 %로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