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적인 예방접종 예약

2020-2021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무료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예방접종 예약서비스를 확대했는데, 실제 접종을 시행하는 일선 의·병원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지한 터라 반발을 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에서는 이전부터 예방접종 예약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동네에 널린 게 의원이라 굳이 예약을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인지 실제 예약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번에 독감 접종 예약과 관련하여 원성을 사는 이유는 예약서비스 자체가 상호 협의하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질병관리본부의 독단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정책을 강제적으로 시행할 때는 이런 시나리오가 있지 않았을까.  

 

-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도우미: 코로나도 있고 한데 미리 예약을 하고 그 시간에 얼른 접종을 하게 하자. 참여 여부를 선택하게 하니까 안 하는 데가 많네. 불참 버튼은 선택 안되게 만들자. 100% 참여, 오케이. (뿌뜻. 대견. 으쓱)

 

- 접종대상자의 생각: 예약이 가능하다고?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가서 접종하고 오면 시간도 아끼고, 편리하고 좋네. 일 잘하네, 이번 정부.

 

하지만 현실은?

 

- 접종대상자: 접종 예약하고 왔는데요. 왜 예약된 시간에 안봐줘요. 이러려고 예약받았어요?

 

- 의·병원 직원: 질본에서 왜 그런 예약을 받는지 모르겠네요. 예약하신 그 시간에 다른 환자분 진료가  예약되어 있어요.

 

인터파크에서 뮤지컬 표를 예매했는데 알고보니 공연하는 곳과 아무런 협의 없이 자기들끼리 예약을 받은 셈이다. 거기다가 공연이 끝났는데도 예약을 받은 꼴.  

 

요즘은 의료기관 자체적인 예약시스템이나 네이버 등 기타서비스를 통해 진료 예약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존 예약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예약을 받고 있는 질병관리본부. 겹치는 예약 하나하나 확인하고 전화해서 취소시키는 뒤치다꺼리도 질본이 하던가. 게다가 10분에 최대 50명까지 예약이 가능하단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나. 의사 공공재에 이어서 환자도 물건짝 취급하는... 

 

국가가 지정해주는 약으로, 국가가 지정한 날짜에, 국가가 일방적으로 예약받아서 접종을 하라니.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선택에 따라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지 민간위탁기관에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최소한 의·병원의 협조를 구하는 시늉 조차도 귀찮다는 것인가. 

 

기존에 참여여부가 선택 가능하니 불참 기관이 많아서 "참여 선택란을 없앴다"는 공지를 자랑스럽게 올린 담당자는 소위 말하는 관종인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