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이 39도가 넘는 고열과 두통 증상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다. 이글을 쓰는 이유는 환자의 증상이나 진단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나에게 오게 된 경위가 참 어이없기 때문이다.
고열 때문에 학교에서는 코로나(COVID-19)를 염려하여 학생을 조퇴시키고 진료를 보게 했다.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보건소를 방문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건소에서는 코로나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코로나는 아닌 것 같으니 응급실이나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니 보건소에서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환자를 평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아이는 발걸음을 돌려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고열이 있다는 이유로 접수조차 할 수 없었고 옆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로 안내를 받았다. 이번에도 코로나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다른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진자와 접촉을 한 것도 아니니 오히려 독감 같은거 아니겠냐면서 종합병원이나 아동병원 진료를 권했다고 한다. 여기서 진료 보면 안되냐는 보호자의 요청에 '외래 진료는 마감됐다'는 답이 돌아왔고, 응급실을 다시 찾았으나 아까와 같은 이유로 입장이 거부되었다.
이쯤되면 보호자는 걱정도 걱정이지만 부아가 치밀어오를 때가 된다. 보호자의 불평에 응급실에서는 근처에 진료가 가능한 병원에 전화를 돌려보았다. 이 시국에 고열 환자를, 코로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환자를, 그것도 다른 병원이 받지 않으려는 환자를 선뜻 받겠다는 작은 규모의 병의원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진찰로는 특이 소견이 없었고, 학교에서는 코로나과 관련이 없다는 확인서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 뿐. 소견서를 쥐어서 보냈으나 검사가 이루어졌는지는 아직 확인을 해보지 않았다.
선별검사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거부하는 일은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하나둘 발견되던 때에도, 확진자가 하루에 수백씩 폭증하던 때에도 검사를 거부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중에는 의사 소견서를 지참했음에도 검사를 받지 못하고 문전박대 당한 후 다시 돌아와 하소연을 하던 분들도... 현실이 그러했는데도 방역을 잘하고 있다고 추켜세우는 뉴스를 보게되면 현실과 정책 사이의 괴리를 심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랴.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꼭 청개구리 짓을 하기 마련이니 넓고 크게 보고 평가를 할 수 밖에.
지금은 검사 대상자가 그 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고, 인력도 장비도 훨씬 여유가 있다. 물론 의료진의 피로 누적은 별개의 문제. 검사를 아주 엄격히 제한적으로 수행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제발 검사 좀 적극적으로 해주면 안될까. 무료 검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비용을 부담하겠다는데도 검사를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쓸데없는 공포감 조성을 피하고, 장사치 의사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의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마음을 일부 이해 할 수는 있다. 그러려면 책임도 같이 질 수 있어야 한다. '아닌거 같으니 검사는 못해주겠다, 그냥 가라'가 아니라 그래서 왜 아픈건지,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를 하면 좋을지까지 상담을 해주거나 실제 진료행위가 따라주어야 하는것 아닌가. 선별진료소와 응급실 혹은 외래 의료진간의 최소한의 협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의료진 개개의 선심에 기대기 전에 병원이 정책을 세울 의지를 가지긴 했을까. 너도나도 내 일이 아니라도 미루는 것은 아닌가.
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학생에게 코로나가 아니라는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이 교육부의 지시인지 학교의 자발적 방침인지는 모르겠다. 학생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려면 교육부-보건복지부-의사협회 혹은 지역 교육청-시도의사회 수준의 협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학교에서는 동네 병의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동네에서는 그런 근거없는 소견서를 작성할 수 없으니 선별진료소로 안내하고 이런 과정에서 서로 불필요한 언쟁이 오가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미열이 나거나 가벼운 기침, 콧물, 인후통이 있어도 자가검진앱에는 모두 정상이라고 입력하는 거짓 보고가 횡행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 아닐까.
신규 확진자 수가 안정되는 듯 하다가 어제는 다시 수십명의 확진자가 나타났다. 안심은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