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프다고 오면 (내) 머리가 아프다.
스스로 증상을 표현하지 못하고 보호자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소아 환자의 경우 이 아이가 실제로 두통을 겪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간헐적인 두통의 경우 진료실에서는 증상과 징후를 발견할 수가 없고, 두통이 있을 때의 아이의 행동에 대해 보호자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실제로 두통은 없으나 표현을 '머리 아파'로 했을 수도 있고. 일시적인 피로감, 코막힘으로 인한 답답함 등을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부비동염이나 근시 등의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별 것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는 일. 별다른 신경학적 증상 없었는데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뇌종양이 발견된 사례도 겪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머리 아픈 것을 호소해서 오는 환자는 그에 맞게 진찰을 하고 필요한 검사와 처치에 대해 설명하고 처방을 내면 내가 계획한대로 일이 진행되고 마무리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우는 다른 증상으로 진료를 다 보고 나가다가 말고 "그런데 얘가 한 번씩 머리가 아프다고 해요"라고 흘리듯이 말을 하는 경우다. 보호자는 별 일 아닌 듯이 말했지만 내게도 별 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대수롭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아주 작은 가능성을 간과한 후 남는 찝찝함을 견딜 수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진료를 본다. 대부분 결론은 조금 더 지켜보자는 상투적이고 뻔한 이야기. 그 사이에 대기실에서는 한숨과 지겨움의 불평이 조금씩 들려온다.
어느 제약사에서 운영하는 의학 관련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질문과 답변 게시판을 보았다. 질문을 올리면 등록된 의사나 제약사의 학술팀에서 답을 달아주는데, 역시 두통에 대한 질문이 올라와 있었다.
게시물만 읽었는데 머리가 아프고 속도 답답해지는 것 같다.
한탄하듯이 글을 쓰기는 했지만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반복적인 두통이나 복통이 있다면 숨은 질병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두통 혹은 복통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심부터 하다가 기저질환을 간과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픈 것은 흔히 꾀병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아이가 이차적인 이득을 노리고 꾀병을 부릴 수는 있겠으나, 보호자와 의사가 이를 먼저 꾀병으로 여긴다면 자칫 큰 병을 놓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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