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안 이야기/진료실에서 12

갑작스러운 독감 접종 중단

질병관리청은 13-18세용 무료 인플루엔자 백신이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되어 오늘로 예정된 접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 무료 접종(6개월~12세)과 임신부, 어르신 접종도 같이 중단했다. 문제를 쉬쉬하며 숨기지 않고, 즉각적인 대처를 하는 모습은 높이 살 만하다. 변질된 백신을 국민들에게 접종해서는 안되는 일이니까. 인플루엔자 백신은 냉장 보관이 원칙이다. 하지만 한 예로 GSK의 플루아릭스의 경우 상온(+21℃)에서 최고 1주일까지도 변질되지 않는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은 상온에 얼마나 방치되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왜 전면적인 중단인가? 13-18세용 물량 중 일부가 문제가 된 것이고, 기존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대상자와 어르신 대상 백신은 문제가 없는데 왜 전부 중단을 했..

독단적인 예방접종 예약

2020-2021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무료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예방접종 예약서비스를 확대했는데, 실제 접종을 시행하는 일선 의·병원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지한 터라 반발을 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에서는 이전부터 예방접종 예약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동네에 널린 게 의원이라 굳이 예약을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인지 실제 예약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번에 독감 접종 예약과 관련하여 원성을 사는 이유는 예약서비스 자체가 상호 협의하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질병관리본부의 독단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정책을 강제적으로 시행할 때는 이런 시나리오가 있지 않았을까. -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도우미: 코로나도..

의사 파업에 즈음하여

의대 신설과 한시적 의대생 증원, 공공의료 의무 복무, 거기다 한약 첩약 급여화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의료계가 달아오르고 있다. 전공의협의회가 주도가 된 파업이 어제 한 차례 있었고, 오는 14일에는 의사협회의 파업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의사의 파업을 놓고서는 의사끼리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누구는 자영업자이고, 누구는 회사원 같은 봉직의이고, 누구는 많은 의사를 고용한 경영자이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이를 두고 착한 의사, 나쁜 의사로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파업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번 정책에 대해서는 하나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다. 정부는 여전히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며, 언론에서는 그에 힘을 싣는 기사를 연이어 내고 있다. 병원협회와 중소병원..

코빼주세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시대. 진료실에서 달라진 '반가운' 풍경이라면 콧물 빼달라는 요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유나 수면에 방해가 될 정도거나, 기침을 유발하고, 코 밑이 헐 정도라면 먼저 나서서 코를 빼고 가라고 하는데 코로나 유행 이후에는 그마저 그만두었다. 간혹 요청하는 보호자도 있지만 비말의 위험성을 살짝 언급하면 손사래를 치며 안빼겠다 한다. 덕분인지 난 철마다 한 번씩 걸리던 감기에서 해방. 어느 블로그에서 장염 걸린 아이를 둔 부호자가 열흘 넘게 다닌 소아과 의사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글 아래 달린 댓글이다. 정말 이 선생님은 장염 치료도 못하고, 아이들 코도 건성으로 봐주는 의사일까? 글쓴이가 진료때 들은 설명을 상세하게 적었는데,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근거 없는 설에 휘둘..

장사꾼 의사

의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참 애매하다. 의술은 인술이라며 상대적인 때로는 절대적인 희생을 기대하고, 이윤을 밝히는 의사를 비난한다. 돈만 밝히는 장사꾼 취급을 하면서. 그런데 진짜 장사꾼은 좋은 선생님 대접을 해준다. 박리다매 전략과 현금할인이라는 불법행위로 얌체 장사꾼 짓을 하는데 어쨌건 내 돈을 아꼈거든. 네이버 블로그에서 예방접종이 저렴하다는 모 연합의원 홍보+후기글을 읽다 보니 착잡해진다. 이렇게라도 먹고살아야 하나 싶다가.. 지킬 건 지켜야지 싶다가..

머리 아픈 아이

머리가 아프다고 오면 (내) 머리가 아프다. 스스로 증상을 표현하지 못하고 보호자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소아 환자의 경우 이 아이가 실제로 두통을 겪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간헐적인 두통의 경우 진료실에서는 증상과 징후를 발견할 수가 없고, 두통이 있을 때의 아이의 행동에 대해 보호자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실제로 두통은 없으나 표현을 '머리 아파'로 했을 수도 있고. 일시적인 피로감, 코막힘으로 인한 답답함 등을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부비동염이나 근시 등의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별 것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는 일. 별다른 신경학적 증상 없었는데 뇌 자기공명영상(MRI..

코로나 핑퐁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이 39도가 넘는 고열과 두통 증상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다. 이글을 쓰는 이유는 환자의 증상이나 진단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나에게 오게 된 경위가 참 어이없기 때문이다. 고열 때문에 학교에서는 코로나(COVID-19)를 염려하여 학생을 조퇴시키고 진료를 보게 했다.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보건소를 방문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건소에서는 코로나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코로나는 아닌 것 같으니 응급실이나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니 보건소에서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환자를 평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아이는 발걸음을 돌려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고열이 있다는 이유로 접수조차 할 수 없었고 옆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로 안내..

버튼 그거

드디어 버튼에 진한 테두리와 색깔이 입혀졌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뻔히 불편함이 보이는데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이제 제법 헛클릭질 없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대상자조회 / 저장 / 삭제 등의 메뉴에 진한 테두리와 색상이 입혀진 것이 보인다. 예전에는 가장 위쪽의 조회 / 초기화 / 즐겨찾기 등과 같이 글자 주위로 옅은 테두리만 있어서 버튼과 텍스트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아 마우스만 왔다갔다 한 적이 많았다. 가뜩이나 눈도 침침한데... 그간 어려 불편함이 꽤 많이 접수되었을텐데 하나하나 반영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차분히 기다려 볼 생각이다.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한 부분까지도 더 개선될 여지가 있으니.

뜻밖의 검소함

진료실 창문이 복도를 향해 나있는데, 그 복도에는 여러 검사실이 있어서아이와 보호자들이 늘 그곳에서 대기하며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소리를본의 아니게 듣게 된다. 오늘은내 얘기가 나오길래귀를 쫑긋 세웠는데. "OO은 진짜 검소한 것 같더라.""왜?""아까 옷 소매 보니까." 응? 무슨 소리인가 싶어얼른 소맷귀를 보았다. 헤어져서올이 풀려가는내 옷 소매. 그래.내일은쇼핑을 좀 하자.

그 날 그 아이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할머니와 손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아이가 열이 있는데학교에 독감이 한창인 때라 병원에 가보라는 연락을 받으셨다는 할머니의 말씀. 검사 결과 인플루엔자 진단을 받고당분간 학교는 쉬고 집에서 격리를 해야한다고 설명드리자아이도 할머니도 곤란한 눈빛이다. 아이는 학교에 가면 안되냐고, 학원도 가면 안되냐고, 꼭 가고 싶다고 말하고할머니께서는 당신도 일을 하러 가야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사정은 딱하지만원론적인 얘기만 반복하고 있는데 학교는 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데.. 중얼거리던 아이가 내내 그 얌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 좀 무서워도 나 집에 혼자서 있을 수 있는데... 대신 할머니가 걱정을 하시겠지." 환자차트를 다시 보았다. 만..